간단한 자료 하나를 정리해야 한다고 생각해 보겠습니다.
내용도 어느 정도 알고 있고 분량도 많지 않습니다. 시작하기 전에는 "30분 정도면 충분하겠는데?"라고 예상합니다.
그런데 막상 시작하면 필요한 파일을 찾는 데 시간이 걸립니다. 작성하다가 빠진 내용을 발견하고, 표현을 수정하고, 마지막으로 확인하다 보니 어느새 한 시간이 훌쩍 지나 있습니다.
이런 일이 한두 번이 아닌데도 다음에 비슷한 일을 맡으면 다시 "이번에는 금방 끝날 것 같다"고 생각하기 쉽습니다.
행동과학에서는 이처럼 어떤 일을 끝내는 데 필요한 시간이나 자원을 실제보다 적게 예상하는 경향을 계획 오류(Planning Fallacy)라는 개념으로 설명합니다.
우리는 계획을 세울 때 가장 순조로운 과정을 떠올리기 쉽다
내일 아침 집에서 8시에 출발해야 한다고 생각해 보겠습니다.
준비하는 데 30분 정도 걸리니 7시 30분부터 준비하면 충분할 것 같습니다.
계산 자체에는 문제가 없어 보입니다.
하지만 실제 아침에는 변수가 생깁니다.
찾던 물건이 보이지 않을 수도 있고, 휴대전화 배터리가 부족할 수도 있습니다. 마지막 순간에 챙겨야 할 것이 생각날 수도 있습니다.
계획을 세울 때는 보통 이런 작은 변수까지 하나씩 떠올리지 않습니다.
'씻고, 옷을 입고, 짐을 챙긴다'처럼 주요 과정만 생각합니다.
그래서 머릿속 계획에서는 모든 단계가 매끄럽게 이어지지만 실제 생활에서는 단계 사이에 예상하지 못했던 시간이 추가될 수 있습니다.
30분짜리 일에도 준비와 마무리 시간이 숨어 있다
어떤 작업의 시간을 예상할 때 우리는 핵심 작업에 필요한 시간만 생각하기 쉽습니다.
예를 들어 문서 작성에 실제로 40분이 필요하다고 해보겠습니다.
그렇다면 예상 시간도 40분이면 충분할까요?
파일을 준비하는 데 10분, 필요한 자료를 찾는 데 15분, 작성한 내용을 다시 확인하는 데 10분이 추가될 수 있습니다.
실제 필요한 시간은 핵심 작업 시간보다 길어집니다.
저라면 시간을 예상할 때 작업을 단순히 '문서 작성 40분'이라고 적기보다 준비-실행-검토 정도로 나눠서 생각해 보겠습니다.
이렇게 나누면 평소에는 잘 보이지 않던 시간이 드러납니다.
과거에도 늦었는데 이번에는 다를 것처럼 느껴진다
계획 오류에서 흥미로운 부분은 과거 경험이 있는데도 비슷한 예상이 반복될 수 있다는 점입니다.
지난번 방을 정리할 때 세 시간이 걸렸다고 생각해 보겠습니다.
그런데 이번에는 왠지 한 시간이면 충분할 것 같습니다.
"지난번에는 물건이 많았어."
"중간에 다른 일을 해서 오래 걸린 거야."
"이번에는 정리할 곳이 많지 않아."
이런 이유가 실제로 맞을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매번 이전의 지연에는 특별한 이유가 있었다고 생각하고 현재 계획은 이상적으로 진행될 것이라고 예상하면 과거 경험이 시간 계산에 제대로 반영되지 않을 수 있습니다.
계획 오류와 낙관편향은 어떻게 다를까?
앞에서 살펴본 낙관편향과 계획 오류는 상당히 가까운 개념처럼 보입니다.
둘 다 미래를 실제보다 긍정적으로 예상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낙관편향은 자신에게 좋은 일이 생길 가능성을 상대적으로 높게 보고 좋지 않은 일이 생길 가능성을 낮게 보는 경향을 넓게 설명합니다.
계획 오류는 그중에서도 특정 과제나 프로젝트를 완료하는 데 필요한 시간, 비용, 노력 등을 과소평가하는 현상에 초점을 둡니다.
예를 들어 "내일은 별다른 문제가 없을 것 같다"고 생각하는 것은 낙관적인 기대와 관련될 수 있습니다.
반면 두 시간 정도 걸리는 일을 "한 시간이면 끝날 것 같다"고 예상하는 것은 계획 오류의 전형적인 모습으로 볼 수 있습니다.
실생활에서는 두 경향이 함께 나타날 수도 있습니다.
상세하게 계획할수록 오히려 자신감이 커질 때도 있다
계획을 세밀하게 만들면 항상 정확도가 높아질 것 같지만 반드시 그런 것은 아닙니다.
오전 9시에 작업을 시작합니다.
9시 30분까지 첫 번째 부분을 끝냅니다.
10시에는 두 번째 부분을 작성합니다.
11시까지 검토를 마칩니다.
이렇게 적으면 계획이 상당히 구체적으로 보입니다.
문제는 각 단계가 예정대로 진행된다는 전제가 들어 있다는 것입니다.
첫 번째 작업이 20분 늦어지면 이후 일정도 함께 밀릴 수 있습니다.
따라서 세밀한 일정과 현실적인 일정은 같은 의미가 아닙니다.
계획을 자세히 만들면서 동시에 어디에서 지연될 수 있는지를 확인하는 과정이 필요합니다.
'이번에는 집중하면 된다'는 생각도 자주 등장한다
계획이 늦어진 이유를 자신의 집중력 문제로만 설명할 때도 있습니다.
"지난번에는 집중을 못 했으니까 오래 걸렸지."
그래서 다음 계획에서는 자신이 처음부터 끝까지 집중할 것이라고 가정합니다.
하지만 사람은 하루 종일 같은 집중력을 유지하기 어렵습니다.
전화가 올 수도 있고, 다른 사람이 말을 걸 수도 있고, 예상하지 못한 업무가 들어올 수도 있습니다.
잠깐 쉬어야 하는 시간도 필요합니다.
저라면 일정이 중요한 작업일수록 최고의 컨디션을 기준으로 시간을 계산하기보다 평범한 날의 작업 속도를 기준으로 잡는 편이 현실적이라고 봅니다.
계획은 가장 잘되는 날보다 보통의 날에도 작동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처음 해보는 일은 예상이 더 어려울 수 있다
익숙한 일이라면 경험을 바탕으로 필요한 시간을 어느 정도 예상할 수 있습니다.
처음 하는 일은 다릅니다.
예를 들어 처음으로 가구를 조립한다고 생각해 보겠습니다.
설명서에는 조립 과정이 간단하게 보일 수 있습니다.
하지만 부품을 구분하고 설명서를 이해하는 것부터 시간이 필요합니다.
중간에 방향을 잘못 맞추면 다시 분해해야 할 수도 있습니다.
경험이 없으면 어디에서 시간이 오래 걸릴지 알기 어렵습니다.
그래서 처음 하는 작업에서는 정확한 시간을 맞히려 하기보다 예상 범위를 넓게 잡는 방법이 더 현실적일 수 있습니다.
작업을 작게 나누면 숨은 시간이 보이기 시작한다
"블로그 글 작성 2시간."
이렇게만 적으면 두 시간이 적절한지 판단하기 어렵습니다.
하지만 작업을 나누면 조금 달라집니다.
주제 정하기, 필요한 정보 확인하기, 구성 만들기, 초안 작성하기, 내용 다듬기, 맞춤법 확인하기처럼 단계가 보입니다.
그러면 이전에는 하나로 보였던 작업 안에 여러 과정이 들어 있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실제로 기록해 보면 글을 직접 쓰는 시간보다 시작 전에 자료를 정리하거나 마지막에 수정하는 시간이 생각보다 길다는 것을 발견할 수도 있습니다.
이런 기록이 쌓이면 다음 계획은 막연한 느낌보다 실제 경험을 바탕으로 세울 수 있습니다.
비슷한 과거 경험을 보는 것이 도움이 된다
계획을 세울 때 사람은 현재 작업의 세부적인 상황에 집중하기 쉽습니다.
"이번 작업은 내용이 간단하니까 금방 끝날 거야."
이런 방식으로 현재 상황만 바라보는 것을 흔히 내부 관점이라고 설명합니다.
반대로 비슷한 작업들이 과거에 실제로 얼마나 걸렸는지 보는 방법도 있습니다.
최근 비슷한 자료 세 개를 만드는 데 각각 2시간, 2시간 30분, 3시간이 걸렸다면 새로운 자료도 어느 정도 비슷한 범위에 있을 가능성을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현재 작업이 특별히 쉬운 이유가 있다면 그 차이를 반영하면 됩니다.
저라면 중요한 일정을 정할 때 "이번에는 얼마나 걸릴까?"보다 "지난번 비슷한 일은 실제로 얼마나 걸렸지?"를 먼저 확인해 보겠습니다.
기억보다 기록이 있다면 더욱 좋습니다.
여유 시간을 넣는 것은 시간을 낭비하는 것이 아니다
한 시간 정도 걸릴 것으로 예상되는 작업에 한 시간만 정확하게 배정하면 작은 변수 하나에도 전체 일정이 흔들릴 수 있습니다.
그래서 일정 사이에 여유 시간을 두는 방법이 사용됩니다.
이 여유 시간은 아무것도 하지 않는 시간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예상하지 못한 수정, 이동, 준비, 문의 같은 변수를 흡수하는 공간입니다.
예상보다 일찍 끝났다면 남은 시간은 다음 작업에 사용할 수 있습니다.
반대로 문제가 생기면 여유 시간이 일정 전체가 밀리는 것을 줄여줍니다.
특히 여러 일정이 연속해서 이어지는 날에는 첫 번째 일정의 작은 지연이 마지막 일정까지 전달될 수 있기 때문에 여유 공간의 의미가 더 커집니다.
예상 시간과 실제 시간을 기록하면 자신의 패턴이 보인다
계획 오류를 이해하는 가장 현실적인 방법 중 하나는 간단한 기록입니다.
작업을 시작하기 전에 예상 시간을 적습니다.
끝난 뒤 실제 걸린 시간을 적습니다.
처음에는 차이가 크게 날 수도 있습니다.
예상 30분, 실제 55분.
예상 1시간, 실제 1시간 40분.
이런 기록이 반복되면 자신의 시간 예측에 일정한 특징이 있다는 것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한 시간이라고 예상한 작업이 실제로는 평균적으로 그보다 더 오래 걸린다는 패턴을 알게 될 수 있습니다.
그다음부터는 자신의 경험을 시간 계획에 반영하면 됩니다.
중요한 것은 예상이 틀렸다는 사실에 실망하는 것이 아니라 틀린 예상도 다음 계획을 위한 데이터로 사용하는 것입니다.
마감 시간보다 시작 시간을 관리하는 편이 유용할 때가 있다
계획 오류가 반복되면 사람은 마감 시간을 더 강하게 정하려고 할 수 있습니다.
"무조건 오후 6시까지 끝낸다."
하지만 필요한 작업량이 그대로라면 마감 시간을 강조한다고 해서 작업 시간이 자동으로 줄어드는 것은 아닙니다.
오히려 시작 시간을 앞당기는 것이 현실적인 방법이 될 수 있습니다.
두 시간이 걸릴 것 같지만 과거에 비슷한 작업이 세 시간 정도 걸렸다면 처음부터 세 시간을 확보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하면 마감 직전에 모든 일을 몰아서 처리해야 하는 상황을 줄일 수 있습니다.
특히 수정 가능성이 높은 작업이라면 '완성 시간'과 '최종 마감 시간'을 다르게 두는 것도 방법입니다.
'아무 문제도 생기지 않는다면'이라는 조건을 붙여볼 수 있다
예상 시간을 정했을 때 한 가지 질문을 해보면 계획이 얼마나 이상적인지 확인하기 쉽습니다.
"이 시간은 아무 문제도 생기지 않을 때 가능한 시간인가?"
답이 그렇다면 그 숫자는 현실적인 예상 시간이라기보다 최상의 경우에 가까울 수 있습니다.
그다음에는 이렇게 물어볼 수 있습니다.
"평범하게 한두 가지 변수가 생기면 얼마나 걸릴까?"
이 질문을 추가하면 일정이 조금 달라집니다.
30분이면 끝날 것 같던 작업에 45분을 배정할 수도 있고, 두 시간으로 예상했던 일에 오후 전체를 확보할 수도 있습니다.
모든 일에 큰 여유를 둘 필요는 없습니다.
다만 마감이 중요한 일일수록 최상의 상황만을 기준으로 계획하지 않는 것이 도움이 됩니다.
계획은 미래의 나에게 보내는 현실적인 약속에 가깝다
계획 오류를 이해하면 계획을 잘 세운다는 의미도 조금 달라집니다.
빈틈없이 시간을 채우는 것이 반드시 좋은 계획은 아닙니다.
오히려 준비 시간, 실수, 수정, 휴식처럼 실제 생활에서 발생하는 요소까지 포함한 계획이 더 오래 유지될 수 있습니다.
저라면 예상보다 일이 자꾸 오래 걸릴 때 "왜 나는 계획대로 못 하지?"라고만 생각하기보다 먼저 예상 방식부터 확인해 보겠습니다.
핵심 작업 시간만 계산했는지, 지난번 실제 시간을 무시하지 않았는지, 모든 과정이 순조롭게 진행될 것이라고 가정했는지를 보는 것입니다.
그리고 다음 계획을 세울 때는 한 가지 질문을 가장 먼저 떠올릴 수 있습니다.
"지난번 비슷한 일은 실제로 얼마나 걸렸지?"
계획 오류를 줄이는 데 필요한 것은 미래를 완벽하게 예측하는 능력이 아닙니다. 자신의 과거 경험을 다음 계획에 조금씩 반영하는 습관에 더 가깝습니다.
예상과 실제의 차이를 기록하다 보면 '30분이면 충분할 것 같은 느낌'보다 내가 실제로 사용하는 시간이 더 좋은 기준이 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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