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가보는 장소까지 이동할 방법을 고른다고 생각해 보겠습니다.
A 경로는 평소 40분 정도 걸리고 교통 상황에 따라 5~10분 정도 차이가 난다는 정보를 확인할 수 있습니다. B 경로는 더 빨리 도착할 수도 있지만 이용 후기가 거의 없어 실제로 얼마나 걸릴지 알기 어렵습니다.
중요한 약속이 있다면 어느 쪽이 마음에 더 편할까요?
B 경로가 실제로 더 빠를 가능성이 있는데도 많은 사람은 결과를 어느 정도 예상할 수 있는 A 경로에 마음이 갈 수 있습니다.
이처럼 사람은 결과가 불확실한 상황에서도 가능성에 대한 정보가 비교적 분명한 선택지보다 확률이나 결과를 제대로 알기 어려운 선택지를 꺼리는 경향을 보일 수 있습니다. 행동경제학에서는 이를 모호성 회피(Ambiguity Aversion)라고 설명합니다.
불확실성과 모호함은 비슷하지만 조금 다르다
두 개념은 일상에서 거의 같은 의미로 사용되기도 합니다.
하지만 행동경제학의 사례를 이해할 때는 구분해 보면 편합니다.
상자 안에 공이 100개 들어 있고 빨간 공이 30개라는 사실을 알고 있다고 생각해 보겠습니다.
빨간 공을 뽑을 가능성은 계산할 수 있습니다.
결과는 뽑기 전까지 알 수 없지만 가능성에 관한 정보는 있습니다.
이번에는 다른 상자를 보겠습니다.
똑같이 공 100개가 들어 있지만 빨간 공이 몇 개인지 전혀 알려주지 않습니다.
이 경우에는 빨간 공을 뽑을 가능성 자체를 정확하게 계산하기 어렵습니다.
두 상황 모두 결과는 알 수 없지만 두 번째 상황에는 확률에 관한 정보까지 부족합니다.
이런 차이가 모호성 회피를 이해하는 중요한 출발점입니다.
결과보다 '모른다는 사실'이 불편할 수 있다
온라인에서 두 개의 서비스를 비교한다고 생각해 보겠습니다.
A 서비스에는 이용 방법과 처리 시간이 구체적으로 설명되어 있습니다.
B 서비스는 더 간단해 보이지만 실제 처리 시간이 어느 정도인지 설명이 없습니다.
B가 더 빠를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도 A를 선택하고 싶어질 수 있습니다.
B가 나빠서가 아니라 판단할 정보가 부족하기 때문입니다.
사람 입장에서는 예상할 수 있는 불편함과 어느 정도인지조차 모르는 불편함이 다르게 느껴질 수 있습니다.
그래서 결과가 조금 불리하더라도 범위를 알고 있는 선택지가 편하게 느껴지기도 합니다.
새로운 서비스를 망설이는 이유에도 모호함이 숨어 있다
평소 사용하던 앱이 있다고 해보겠습니다.
조금 불편하지만 기능과 사용법은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러던 중 새로운 앱을 발견했습니다.
설명을 보면 기존 앱보다 편리해 보입니다.
하지만 실제 사용 후기가 많지 않고 내가 사용하는 기능이 제대로 작동하는지도 확실하지 않습니다.
이런 상황에서는 기존 앱을 계속 사용하기 쉽습니다.
여기에는 앞에서 살펴본 현상유지 편향이나 전환비용도 영향을 줄 수 있습니다.
동시에 새로운 서비스에 대한 정보가 부족하다는 모호성도 선택에 영향을 줄 수 있습니다.
새로운 것이 반드시 나쁠 것이라고 생각해서가 아니라 얼마나 좋은지, 얼마나 불편한지 판단할 자료가 부족한 것입니다.
모호성 회피와 위험 회피는 같은 개념이 아니다
두 개념은 자주 헷갈립니다.
간단한 예로 차이를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A 선택지는 문제가 발생할 가능성이 10%라고 정확하게 알려져 있습니다.
B 선택지는 문제가 발생할 가능성이 몇 퍼센트인지 알 수 없습니다.
A와 B 모두 좋지 않은 결과가 발생할 수 있다는 점에서는 위험이 존재합니다.
하지만 B는 그 위험의 정도를 판단하기 어렵습니다.
모호성 회피에서는 바로 이 알 수 없음 자체를 사람들이 꺼릴 수 있다는 점이 중요합니다.
따라서 위험이 있다는 것과 위험의 정도를 모른다는 것은 같은 상황이 아닙니다.
확률 가중과도 구분해서 볼 수 있다
앞에서 살펴본 확률 가중에서는 확률이 주어져 있어도 사람이 그 가능성을 심리적으로 다르게 받아들일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문제가 발생할 확률이 1%라고 명확하게 적혀 있는데도 그 가능성을 매우 크게 느낄 수 있습니다.
모호성 회피에서는 상황이 다릅니다.
애초에 1%인지 10%인지 판단할 정보가 충분하지 않습니다.
쉽게 구분하면 이렇습니다.
확률 가중에서는 숫자는 있는데 받아들이는 무게가 달라질 수 있습니다.
모호성 회피에서는 판단에 사용할 숫자 자체가 충분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실제 생활에서는 두 상황이 섞여 나타나기도 하지만 이렇게 나눠 생각하면 차이가 조금 더 선명해집니다.
후기가 없는 제품이 더 불안하게 느껴지는 것도 비슷하다
온라인에서 비슷한 제품 두 개를 발견했다고 생각해 보겠습니다.
A 제품에는 후기가 500개 있습니다.
좋다는 의견도 있고 단점에 관한 내용도 있습니다.
B 제품에는 후기가 세 개뿐입니다.
제품 설명만 보면 B가 더 마음에 듭니다.
그런데 실제로 주문하려고 하면 A가 더 안전하게 느껴질 수 있습니다.
A 제품은 완벽하지 않더라도 어떤 장단점이 있는지 어느 정도 예상할 수 있습니다.
B 제품은 좋을 수도 있지만 예상하지 못한 문제가 있을 수도 있습니다.
여기에서 중요한 것은 후기 500개가 있는 제품이 반드시 더 좋다는 뜻이 아닙니다.
단지 알고 있는 정보의 양이 선택에서 느끼는 불확실성을 바꿀 수 있다는 것입니다.
정보를 조금만 얻어도 선택이 달라질 수 있다
모호함의 특징은 추가 정보가 생기면 줄어들 수 있다는 점입니다.
처음 가는 장소의 주차 상황을 전혀 모른다고 생각해 보겠습니다.
주차장이 있는지, 몇 대나 들어가는지, 주변에 다른 주차 공간이 있는지도 모릅니다.
그러면 자동차를 이용하는 것이 부담스럽게 느껴질 수 있습니다.
하지만 지도에서 주차장 정보를 확인하고 최근 방문자의 설명까지 읽으면 상황이 달라집니다.
여전히 실제로 자리가 있을지는 알 수 없습니다.
하지만 '아무것도 모르는 상태'에서는 벗어났습니다.
저라면 어떤 선택을 단순히 불안하다는 이유로 제외하고 있다면 정보를 조금 더 얻었을 때 그 불안이 줄어드는지 먼저 확인해 보겠습니다.
정보가 부족한 문제라면 추가 확인만으로 선택지가 달라질 수 있기 때문입니다.
정보가 없다는 것과 나쁘다는 것은 다르다
처음 출시된 제품은 사용 후기가 많지 않을 수 있습니다.
새로 생긴 가게도 마찬가지입니다.
평가가 적다고 해서 반드시 품질이 낮다는 의미는 아닙니다.
아직 사람들이 충분히 경험하지 않았을 뿐일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정보가 부족하면 그 빈 공간을 조심스러운 방향으로 해석할 수 있습니다.
"후기가 없으니 문제가 있는 것 아닐까?"
이런 생각이 들 수 있습니다.
하지만 정확하게 표현하면 현재 알고 있는 사실은 '문제가 있다'가 아니라 '정보가 충분하지 않다'입니다.
두 문장은 상당히 다릅니다.
모호성 회피를 이해하면 정보 부족을 부정적인 정보로 바꾸어 해석하고 있지는 않은지 확인할 수 있습니다.
반대로 익숙하다는 이유만으로 안전한 것도 아니다
알고 있는 선택지는 편하게 느껴집니다.
여러 번 이용한 서비스라면 장점과 단점을 모두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새로운 선택지보다 안전하게 느껴질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익숙함이 객관적으로 더 좋은 조건을 보장하는 것은 아닙니다.
기존 서비스에도 단점은 있을 수 있습니다.
단지 그 단점을 이미 경험했기 때문에 얼마나 불편한지 알고 있을 뿐입니다.
저라면 기존 선택과 새로운 선택을 비교할 때 이런 질문을 사용할 수 있습니다.
"기존 선택지가 더 좋은 걸까, 아니면 단점을 이미 알고 있어서 편한 걸까?"
이 질문을 해보면 익숙함과 실제 장점을 조금 더 쉽게 구분할 수 있습니다.
모호함을 완전히 없애려고 하면 결정이 더 어려워질 수도 있다
정보가 부족하다면 더 찾아보는 것이 도움이 됩니다.
하지만 모든 불확실성을 없애는 것은 현실적으로 어렵습니다.
새로운 가게를 방문하기 전에 후기 수백 개를 모두 읽어도 내가 방문하는 날의 상황까지 정확하게 알 수는 없습니다.
새로운 앱의 기능을 아무리 조사해도 실제로 사용하기 전에는 나에게 얼마나 잘 맞을지 완벽하게 알기 어렵습니다.
그래서 어느 순간에는 정보 탐색을 멈추고 선택해야 합니다.
앞에서 살펴본 탐색비용과 연결되는 부분입니다.
정보를 더 얻어서 줄일 수 있는 모호함과 실제로 경험해야만 알 수 있는 부분을 구분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작게 시험해 보는 방법도 있다
결과를 잘 모르는 선택지를 처음부터 크게 선택할 필요는 없습니다.
새로운 작업 도구가 궁금하다면 모든 환경을 한꺼번에 바꾸기보다 작은 작업 하나에서 사용해 볼 수 있습니다.
새로운 정리 방법이라면 집 전체를 바꾸기 전에 서랍 하나에 적용해 볼 수 있습니다.
이렇게 하면 처음에는 없었던 경험 데이터가 생깁니다.
한 번 사용했다고 전체를 완벽하게 알 수 있는 것은 아니지만 적어도 완전히 모르는 상태에서는 벗어날 수 있습니다.
다만 앞에서 살펴본 소수의 법칙처럼 한두 번의 결과를 전체로 확대해서 판단하지 않는 것도 중요합니다.
작은 시험은 결론을 확정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모호함을 조금 줄이기 위한 과정으로 보는 편이 적절합니다.
저라면 '위험한 걸까, 그냥 모르는 걸까?'라고 물어봅니다
새로운 선택지가 유난히 불편하게 느껴질 때 사용할 수 있는 질문이 있습니다.
"이 선택지가 실제로 문제가 많다는 정보가 있는 걸까, 아니면 내가 아직 정보를 충분히 모르는 걸까?"
둘은 전혀 다른 상황입니다.
실제로 반복되는 문제가 확인되었다면 선택에 반영할 수 있습니다.
반면 정보가 부족할 뿐이라면 필요한 정보를 조금 더 찾아볼 수 있습니다.
그리고 한 가지 질문을 추가할 수 있습니다.
"어떤 정보를 알게 되면 선택할 수 있을까?"
사용 방법인지, 실제 크기인지, 처리 시간인지 구체적으로 정하면 끝없이 정보를 찾는 일을 줄일 수 있습니다.
알고 있는 불편함과 모르는 가능성 사이에서 판단하기
사람은 미래를 완벽하게 알 수 없습니다.
그래서 어느 정도 예측 가능한 선택지를 선호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입니다.
특히 중요한 일정처럼 결과가 크게 영향을 미치는 상황에서는 잘 아는 방법을 선택하는 것이 충분히 합리적일 수도 있습니다.
문제는 '잘 모른다'는 이유만으로 새로운 선택지가 자동으로 나쁜 선택이 되는 경우입니다.
저라면 익숙한 방법과 새로운 방법 사이에서 고민할 때 장단점뿐 아니라 내가 실제로 알고 있는 정보와 아직 모르는 정보를 따로 적어보겠습니다.
그러면 막연한 불안이 구체적인 질문으로 바뀔 수 있습니다.
모호성 회피를 이해하는 목적은 항상 새로운 것을 선택하는 데 있지 않습니다. 모르는 상황을 무조건 피하는 것도, 반대로 불확실성을 무시하는 것도 답은 아닙니다.
중요한 것은 '나쁜 선택이라서 피하는 것인지, 단지 잘 모르기 때문에 피하는 것인지'를 구분하는 것입니다.
이 차이를 알아차리면 익숙함만을 기준으로 선택하지 않으면서도, 필요한 정보가 부족한 상황에서는 충분히 확인한 뒤 결정하는 조금 더 현실적인 기준을 만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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