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야 할 일을 알고도 시작하지 못하는 이유, 행동경제학에서 행동 마찰이란 무엇일까?


책상 위에 읽으려고 구입한 책이 한 권 놓여 있다고 생각해 보겠습니다.

분명 읽고 싶은 책입니다. 내용도 궁금하고 시간이 날 때마다 조금씩 읽어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막상 여유 시간이 생기면 책을 펼치는 대신 휴대전화를 보거나 다른 일을 하게 됩니다.

반대로 책을 펼쳐서 책상 한가운데 놓아두면 어떨까요?

다음에 책상에 앉았을 때 자연스럽게 몇 줄을 읽게 될 수도 있습니다.

책의 내용이나 읽고 싶은 마음이 달라진 것은 아닙니다. 달라진 것은 행동을 시작하기까지 필요한 과정입니다.

이처럼 어떤 행동을 실행하는 과정에서 필요한 시간, 노력, 절차, 불편함 등이 행동을 어렵게 만드는 요인을 **행동 마찰(Behavioral Friction)**이라고 부릅니다.

행동경제학과 행동설계에서는 사람들이 어떤 선택을 실제 행동으로 옮기는지 이해할 때 이러한 마찰에 주목합니다.

하고 싶은 마음과 실제 행동 사이에는 거리가 있다

우리는 어떤 행동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알고 있어도 바로 실행하지는 않습니다.

방을 정리해야 한다는 것을 알지만 시작하지 못할 수 있습니다.

읽고 싶은 책이 있어도 계속 미룰 수 있습니다.

사진 파일을 정리해야 한다고 생각하면서도 몇 달 동안 그대로 둘 수 있습니다.

이런 상황을 단순히 의지가 부족하기 때문이라고 설명하기는 어렵습니다.

행동을 시작하기 위해 거쳐야 하는 과정이 생각보다 복잡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어 사진을 정리하려면 컴퓨터를 켜고, 저장 폴더를 찾고, 파일을 분류할 기준을 정해야 합니다.

정리 자체보다 시작하기 전의 준비 과정이 더 부담스럽게 느껴질 수도 있습니다.

행동 마찰은 바로 이런 작은 장애물에 주목하는 개념입니다.

작은 불편함도 반복되면 행동을 바꿀 수 있다

행동 마찰이 반드시 커다란 장애물을 의미하는 것은 아닙니다.

로그인을 한 번 더 해야 하는 일, 물건을 꺼내기 위해 서랍을 여러 번 열어야 하는 일, 필요한 파일을 찾기 위해 폴더를 계속 이동해야 하는 일도 마찰이 될 수 있습니다.

각각의 과정은 몇 초밖에 걸리지 않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자주 반복되는 행동이라면 작은 불편함이 누적됩니다.

예를 들어 매일 사용하는 문구류가 책상에서 멀리 떨어진 수납장 안에 있다고 생각해 보겠습니다.

사용할 때마다 자리에서 일어나 수납장을 열어야 합니다.

반면 필요한 물건을 손이 닿는 위치에 두면 사용하기가 쉬워집니다.

이때 물건을 사용하는 목적은 그대로입니다.

단지 행동을 실행하는 데 필요한 과정이 줄어든 것입니다.

행동 마찰은 시간뿐 아니라 생각하는 부담도 포함한다

마찰이라고 하면 물리적으로 불편한 상황부터 떠올리기 쉽습니다.

하지만 행동을 시작하기 전에 무엇을 해야 할지 결정하는 과정도 부담이 될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책상을 정리하려고 하는데 물건이 너무 많다고 생각해 보겠습니다.

어떤 물건부터 정리해야 할지, 무엇을 버려야 할지, 어디에 보관해야 할지 결정해야 합니다.

이런 판단이 한꺼번에 필요하면 시작하기 어려울 수 있습니다.

반면 '오늘은 책상 위 종이만 분류한다'고 정하면 해야 할 일이 명확해집니다.

정리해야 할 물건의 총량은 변하지 않았지만 처음에 판단해야 하는 범위가 줄어든 것입니다.

저라면 어떤 일을 계속 미루고 있다면 먼저 그 일을 시작하기 전에 결정해야 하는 것이 너무 많지는 않은지 확인해 보겠습니다.

웹사이트의 복잡한 가입 절차도 행동 마찰이 될 수 있다

온라인 서비스에서도 행동 마찰을 쉽게 찾아볼 수 있습니다.

어떤 웹사이트에 가입하려고 한다고 생각해 보겠습니다.

이메일을 입력하고 비밀번호를 설정합니다.

그다음 여러 항목을 작성하고 인증 절차까지 거쳐야 합니다.

이 과정에서 예상보다 시간이 오래 걸리면 가입을 중단할 수도 있습니다.

반대로 필요한 정보만 간단하게 입력하도록 구성된 서비스는 시작하기 편하게 느껴질 수 있습니다.

이런 이유로 서비스 설계에서는 사용자가 목표를 달성하기까지 거쳐야 하는 단계를 살펴봅니다.

다만 모든 절차를 없애는 것이 좋은 설계라는 뜻은 아닙니다.

보안 확인이나 중요한 내용에 대한 동의처럼 필요한 과정도 있기 때문입니다.

중요한 것은 사용자에게 필요한 절차와 불필요하게 복잡한 절차를 구분하는 것입니다.

행동 마찰과 기본값 효과는 어떤 관계가 있을까?

앞에서 살펴본 기본값 효과는 별도의 선택을 하지 않았을 때 미리 설정된 옵션이 그대로 유지되는 경향을 설명합니다.

행동 마찰은 어떤 행동을 실행하기 위해 필요한 노력이나 절차에 초점을 둡니다.

예를 들어 앱의 알림 설정이 기본적으로 켜져 있다고 생각해 보겠습니다.

알림을 끄려면 설정 메뉴를 찾아 여러 단계를 거쳐야 합니다.

이때 기본값 효과와 행동 마찰이 함께 작용할 수 있습니다.

처음부터 켜져 있는 설정을 그대로 유지하는 경향이 있을 수 있고, 변경 절차가 복잡해서 설정을 바꾸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두 개념은 서로 다르지만 실제 서비스 환경에서는 연결되어 나타날 수 있습니다.

현재편향과도 구분할 필요가 있다

현재편향은 미래의 이익보다 지금 당장의 만족을 더 중요하게 평가하는 경향입니다.

예를 들어 책을 읽는 것이 장기적으로 도움이 된다고 생각하면서도 당장 재미있는 영상을 선택하는 경우를 떠올릴 수 있습니다.

행동 마찰은 책을 읽는 과정이 얼마나 쉽게 시작될 수 있는지에 초점을 둡니다.

책이 잘 보이지 않는 곳에 있거나 읽을 부분을 찾기 어렵다면 시작하기가 더 번거로울 수 있습니다.

따라서 독서를 미루는 행동에는 현재편향과 행동 마찰이 함께 영향을 줄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모든 미루기를 행동 마찰로 설명할 수는 없습니다.

실제로 그 활동에 관심이 줄었거나 다른 일이 더 중요해졌을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좋은 습관을 만들 때는 시작 과정을 줄이는 것이 도움이 된다

새로운 습관을 만들려고 할 때 처음부터 큰 목표를 세우는 경우가 있습니다.

매일 한 시간씩 책을 읽겠다거나 집 전체를 정리하겠다는 계획입니다.

하지만 시작하는 과정이 부담스러우면 실천이 어려워질 수 있습니다.

이럴 때는 행동의 첫 단계를 작게 만드는 방법을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독서 습관을 만들고 싶다면 매일 정해진 시간에 책을 펼치는 것부터 시작할 수 있습니다.

정리 습관을 만들고 싶다면 하루에 서랍 한 칸을 확인하는 방식도 가능합니다.

핵심은 목표를 무조건 낮추는 것이 아닙니다.

행동을 시작하기 위해 넘어야 하는 첫 번째 장애물을 줄이는 것입니다.

작은 행동이 반복되면 이후에 활동 범위를 넓히는 것도 검토할 수 있습니다.

물건을 어디에 두는지도 행동에 영향을 줄 수 있다

집 안의 물건 배치를 생각해 보겠습니다.

자주 사용하는 물건이 높은 선반 안쪽에 있으면 꺼내기가 번거롭습니다.

반면 눈에 잘 띄고 손이 닿는 위치에 있으면 사용하기 쉽습니다.

이 차이는 작은 것처럼 보이지만 반복적인 생활에서는 의미가 있을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매일 사용하는 메모장을 책상 서랍 깊숙한 곳에 넣어두었다고 해보겠습니다.

메모가 필요할 때마다 서랍을 열고 다른 물건을 치워야 한다면 휴대전화에 임시로 적거나 기억에 의존할 수도 있습니다.

반대로 메모장을 펼쳐서 가까운 곳에 두면 기록하기가 쉬워집니다.

저라면 자주 사용하는 물건을 정리할 때 단순히 보기 좋게 배치하는 것뿐 아니라 실제로 사용할 때 몇 단계를 거쳐야 하는지도 고려하겠습니다.

행동 마찰을 늘리는 것이 도움이 되는 상황도 있다

행동 마찰은 무조건 줄여야 하는 것은 아닙니다.

어떤 행동을 줄이고 싶다면 오히려 실행 과정을 조금 번거롭게 만드는 방법을 사용할 수도 있습니다.

예를 들어 공부하는 동안 자꾸 휴대전화를 확인한다고 생각해 보겠습니다.

휴대전화를 책상 바로 옆에 두면 쉽게 집어 들 수 있습니다.

반면 손이 닿지 않는 곳에 두면 확인하기 위해 자리에서 일어나야 합니다.

이 작은 과정이 행동을 다시 생각할 기회를 만들 수 있습니다.

다만 이런 방법이 모든 사람에게 동일하게 효과적인 것은 아닙니다.

휴대전화를 확인해야 하는 중요한 이유가 있다면 멀리 두는 것이 불편할 수도 있습니다.

따라서 자신의 생활 환경과 필요에 맞게 조정해야 합니다.

선택을 어렵게 만드는 절차가 항상 나쁜 것은 아니다

어떤 행동에는 충분한 확인 과정이 필요합니다.

예를 들어 중요한 파일을 삭제할 때 확인 창이 나타난다고 생각해 보겠습니다.

한 번 더 확인해야 하므로 삭제 과정은 조금 번거로워집니다.

하지만 실수로 파일을 삭제하는 일을 줄이는 데 도움이 될 수 있습니다.

이처럼 행동 마찰은 사용자를 보호하는 역할을 하기도 합니다.

반대로 자주 사용하는 단순 기능에 지나치게 많은 확인 절차가 있다면 불편함만 커질 수 있습니다.

따라서 좋은 행동설계는 모든 마찰을 없애는 것이 아니라 어디에 마찰이 필요하고 어디에서 줄여야 하는지 판단하는 과정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계속 미루는 일은 첫 단계부터 살펴볼 수 있다

어떤 일을 계속 미루고 있다면 전체 목표를 생각하기 전에 첫 단계를 살펴보는 것이 도움이 될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사진 파일을 정리해야 한다고 생각해 보겠습니다.

처음부터 수천 장의 사진을 모두 분류하려고 하면 부담스럽습니다.

하지만 오늘은 사진이 저장된 폴더를 확인하고 중복 파일 몇 개만 정리한다고 정하면 시작하기 쉬워질 수 있습니다.

저라면 미루고 있는 일을 다음과 같이 나누어 보겠습니다.

먼저 시작하기 위해 준비해야 하는 것이 무엇인지 확인합니다.

그다음 불필요한 준비 과정이 있는지 살펴봅니다.

마지막으로 지금 바로 실행할 수 있는 가장 작은 행동을 정합니다.

이렇게 하면 막연하게 느껴졌던 일이 구체적인 행동으로 바뀔 수 있습니다.

환경을 바꾸는 것이 의지를 다지는 것보다 쉬울 때도 있다

새로운 습관을 만들려고 할 때 사람들은 종종 의지부터 다집니다.

'이번에는 반드시 실천해야지.'

하지만 생활 환경이 그대로라면 이전과 같은 불편함을 반복해서 경험할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매일 사용하는 작업 도구를 찾는 데 시간이 걸린다면 더 부지런해지려고 노력하기보다 도구의 위치를 바꾸는 편이 간단할 수 있습니다.

책을 읽고 싶다면 독서 의지를 계속 다지는 것보다 책을 쉽게 펼칠 수 있는 장소에 두는 방법이 도움이 될 수도 있습니다.

물론 환경을 바꾼다고 모든 행동이 자동으로 달라지는 것은 아닙니다.

행동에는 동기, 시간, 우선순위, 개인적인 상황 등 여러 요인이 영향을 줍니다.

다만 환경에서 발생하는 작은 장애물을 줄이면 원하는 행동을 시작하기 쉬워질 수 있습니다.

저라면 '왜 안 하지?'보다 '어디에서 막히지?'를 묻겠습니다

어떤 일을 계속 미루고 있을 때 스스로에게 '왜 이렇게 실천하지 못할까?'라고 질문하기 쉽습니다.

하지만 이 질문만으로는 구체적인 해결 방법을 찾기 어려울 수 있습니다.

저라면 질문을 조금 바꾸겠습니다.

"이 행동을 시작하려면 어떤 과정을 거쳐야 하고, 나는 어디에서 가장 번거로움을 느끼는 걸까?"

책을 읽기 어렵다면 책을 찾는 과정이 불편한지 확인할 수 있습니다.

정리를 시작하기 어렵다면 물건을 분류할 기준이 없는지 살펴볼 수 있습니다.

컴퓨터 작업을 미룬다면 필요한 파일이 여러 폴더에 흩어져 있는지 확인할 수 있습니다.

이렇게 하면 문제를 막연한 의지 부족으로만 해석하지 않고 실제로 바꿀 수 있는 환경과 절차를 발견할 가능성이 높아집니다.

행동을 바꾸려면 시작하기 쉬운 구조를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

행동 마찰은 우리가 어떤 일을 실행할 때 작은 절차와 불편함이 얼마나 중요한 역할을 할 수 있는지 보여줍니다.

하고 싶은 마음이 충분해도 시작 과정이 복잡하면 행동으로 이어지기 어려울 수 있습니다.

반대로 큰 의욕이 없는 날에도 필요한 물건이 준비되어 있고 다음 행동이 명확하다면 시작하기가 상대적으로 쉬울 수 있습니다.

저라면 새로운 습관을 만들거나 반복적인 일을 개선할 때 목표만 생각하지 않고 실행 과정도 함께 살펴보겠습니다.

"이 행동을 지금보다 한 단계 더 쉽게 만들 방법은 없을까?"

필요한 물건을 가까이 두는 일, 준비 과정을 미리 끝내는 일, 해야 할 일을 작게 나누는 일도 출발점이 될 수 있습니다.

행동 마찰을 이해하는 목적은 모든 일을 쉽고 편하게 만들려는 데 있지 않습니다.

원하는 행동에는 불필요한 장애물을 줄이고, 신중해야 할 행동에는 적절한 확인 과정을 남겨두는 것이 핵심입니다.

이런 관점으로 일상을 살펴보면 반복해서 미루던 일이나 불편하게 느껴졌던 작업에서 생각보다 단순한 개선 방법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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