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을 정리하다 보면 오랫동안 사용하지 않은 물건을 발견할 때가 있습니다.서랍 안에 몇 년째 넣어둔 머그컵이나 거의 펼쳐보지 않은 책, 예전에 사용하던 전자기기 같은 것들입니다. 평소에는 존재조차 잊고 있었는데 막상 버리거나 중고로 판매하려고 하면 생각보다 쉽게 손에서 놓이지 않습니다.
중고 판매 가격을 정할 때도 비슷한 일이 생깁니다.
내가 가진 물건은 5만 원 정도는 받아야 할 것 같은데, 똑같은 중고 제품을 내가 구매한다고 생각하면 5만 원을 지불하기에는 비싸다고 느껴질 수 있습니다.
물건 자체는 같은데 소유하고 있는지가 판단에 영향을 주는 것입니다.
행동경제학에서는 이처럼 어떤 대상을 소유하게 된 뒤 소유하기 전보다 그 가치를 더 높게 평가하는 경향을 보유효과(Endowment Effect)라고 설명합니다.
내 것이 되는 순간 판단의 기준이 달라질 수 있다
중고로 물건을 판매해 보면 보유효과를 비교적 쉽게 이해할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새 제품 가격이 10만 원인 소형 가전을 몇 달 사용했다고 생각해 보겠습니다.
판매자 입장에서는 상태가 좋고 많이 사용하지 않았으니 8만 원 정도를 받고 싶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구매자 입장에서는 생각이 다릅니다.
조금만 더 지불하면 새 제품을 살 수 있고, 중고 제품에는 사용 흔적이나 고장 가능성 같은 불확실성도 있습니다. 그래서 6만 원 정도라면 구매하겠다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이 차이가 모두 보유효과 때문이라고 할 수는 없습니다. 판매자와 구매자는 실제로 다른 조건과 위험을 고려하기 때문입니다.
다만 소유자가 자신의 물건을 평가할 때 '이 물건을 얻기 위해 얼마를 낼 것인가'보다 '이 물건을 포기하려면 얼마를 받아야 하는가'를 생각하게 된다는 점은 중요한 차이를 만듭니다.
이미 내 것이 된 대상을 내놓는 일은 새로운 물건을 사지 않는 것과 심리적으로 다르게 받아들여질 수 있습니다.
얻지 못하는 것과 가지고 있던 것을 잃는 것은 다르게 느껴진다
보유효과를 이해할 때 앞에서 살펴본 손실에 대한 관점이 다시 등장합니다.
아직 가지고 있지 않은 머그컵을 사지 않으면 새로운 물건을 얻지 못한 것입니다.
반면 이미 내 책상 위에 있는 머그컵을 다른 사람에게 넘기면 가지고 있던 물건을 잃는 상황이 됩니다.
경제적인 결과만 보면 물건과 돈을 서로 교환하는 과정이지만 사람은 현재 보유한 상태를 하나의 기준으로 삼을 수 있습니다.
그 기준에서 물건을 내놓는 것은 손실처럼 느껴질 수 있습니다.
그래서 물건을 포기하는 대신 받으려는 금액과 처음부터 그 물건을 얻기 위해 지불하려는 금액 사이에 차이가 나타날 수 있습니다.
이러한 특징 때문에 보유효과는 행동경제학의 손실회피와 밀접하게 연결해서 설명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오래 가지고 있었다고 반드시 보유효과가 강해지는 것은 아니다
보유효과를 단순히 추억이 많은 물건을 버리지 못하는 현상으로 이해하면 범위가 너무 좁아집니다.
물론 개인적인 기억이 담긴 물건은 더 높은 가치를 느낄 수 있습니다.
여행에서 구입한 기념품이나 오래 사용한 물건은 시장가격과 별개로 개인적인 의미를 가질 수 있습니다.
하지만 보유효과는 반드시 오랫동안 소유해야만 나타나는 개념은 아닙니다.
어떤 대상을 자신의 것이라고 인식하는 것 자체가 평가에 영향을 줄 가능성을 설명하는 데 초점이 있습니다.
반대로 오랫동안 가지고 있었더라도 전혀 필요하지 않고 특별한 의미도 없는 물건이라면 쉽게 처분할 수도 있습니다.
따라서 모든 소유물에 똑같은 보유효과가 발생한다고 보는 것은 적절하지 않습니다.
중고거래에서 판매자와 구매자의 가격 차이가 커지는 이유
중고거래 게시물을 보다 보면 판매자가 생각하는 가격과 구매자가 원하는 가격 사이에 상당한 차이가 있는 경우가 있습니다.
판매자는 처음 구입했을 때의 가격을 기억합니다.
얼마나 조심스럽게 사용했는지도 알고 있습니다. 흠집이 거의 없고 개인적으로 만족하며 사용했던 제품이라면 높은 가격을 책정하고 싶을 수 있습니다.
반면 구매자는 판매자의 경험을 공유하지 않습니다.
현재 다른 중고 제품은 얼마에 거래되는지, 새 제품을 할인받아 구입하면 얼마인지 등을 비교합니다.
이럴 때 자신이 지불했던 원래 가격만 기준으로 판매가격을 정하면 실제 시장에서 거래되는 가격과 차이가 생길 수 있습니다.
저도 사용하던 물건의 가치를 판단할 때 구입 당시 가격을 먼저 떠올리면 예상 가격이 높아지기 쉽습니다. 반대로 같은 상태의 제품을 지금 내가 구매한다면 얼마까지 지불할지를 생각해 보면 기준을 다시 잡기가 훨씬 수월합니다.
판매자의 시선에서 잠시 벗어나 구매자의 입장에서 보는 것입니다.
무료 체험 뒤 제품을 돌려보내기 아쉬운 상황도 생각해 볼 수 있다
어떤 제품을 일정 기간 사용해 본 뒤 구매 여부를 결정할 수 있는 상황을 생각해 보겠습니다.
처음에는 없어도 생활하는 데 아무 문제가 없었던 제품입니다.
그런데 며칠 동안 집에 두고 사용하면서 자신의 생활환경 일부처럼 느껴지기 시작할 수 있습니다.
이후 반납 시점이 되면 처음 구매를 고민했을 때와 판단이 달라질 가능성이 있습니다.
이미 익숙해진 편리함을 포기하는 것처럼 느껴질 수 있기 때문입니다.
물론 체험 후 구매하는 사람이 모두 보유효과 때문에 결정한다고 볼 수는 없습니다.
실제로 사용해 보면서 제품의 장점을 정확하게 알게 되었을 수도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체험을 통해 새롭게 얻은 정보와 이미 사용 중인 것을 포기하기 싫은 감정을 구분해 보는 것입니다.
제품이 정말 가격만큼 유용한지 다시 판단하면 조금 더 명확하게 선택할 수 있습니다.
보유효과와 매몰비용은 서로 다른 개념이다
두 개념은 모두 이미 가지고 있는 것과 관련되어 보여 혼동하기 쉽습니다.
매몰비용은 이미 지출했고 되돌리기 어려운 돈이나 시간 때문에 현재의 선택이 영향을 받는 상황과 관련됩니다.
예를 들어 비싼 운동기구를 샀다는 이유만으로 필요하지 않은데도 계속 보관한다면 과거에 지불한 가격이 판단에 영향을 주고 있을 수 있습니다.
보유효과의 핵심은 조금 다릅니다.
현재 내가 소유하고 있다는 사실 때문에 물건을 포기할 때 더 높은 가치를 요구하는 현상에 초점이 있습니다.
현실에서는 두 가지가 동시에 나타날 수도 있습니다.
"비싸게 샀는데 어떻게 이 가격에 팔아?"라는 생각에는 과거 구매가격에 대한 매몰비용과 현재 가진 물건을 내놓는 데 대한 보유효과가 함께 영향을 줄 가능성이 있습니다.
기업의 의사결정에서도 '우리가 가진 것'이 특별해 보일 수 있다
보유효과를 개인의 물건 정리에만 적용할 필요는 없습니다.
조직에서도 현재 보유한 자원이나 기존 방식을 높게 평가할 가능성이 있습니다.
회사가 오랫동안 자체적으로 만든 시스템을 사용하고 있다고 생각해 보겠습니다.
직원들은 시스템의 장점과 개발 과정에서 들인 노력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외부의 새로운 시스템과 비교할 때 기존 시스템의 장점을 더 크게 평가할 수 있습니다.
반대로 외부에서 평가하는 사람은 지금부터 필요한 기능과 유지비용을 중심으로 볼 가능성이 있습니다.
물론 기존 시스템에는 실제로 중요한 노하우가 축적되어 있을 수 있으므로 단순히 오래됐다는 이유로 교체할 필요는 없습니다.
다만 "우리 것이니까 가치가 있다"와 "현재 조건에서도 실제로 가치가 있다"는 판단은 구분할 필요가 있습니다.
물건을 정리할 때는 소유하지 않았다고 가정해 볼 수 있다
집 안의 물건을 정리하다 보면 모든 물건에 각각의 이유가 생깁니다.
언젠가 사용할 것 같고 버리기는 아깝고 다시 사려면 돈이 든다는 생각이 이어집니다.
이럴 때 활용할 수 있는 질문이 있습니다.
"지금 이 물건이 내게 없다면 현재 가격을 주고 다시 살까?"
다시 살 생각이 분명하다면 실제로 필요한 물건일 가능성이 높습니다.
반대로 돈을 내고 다시 구입할 생각은 전혀 없는데 단지 가지고 있다는 이유로 놓지 못하고 있다면 현재 평가에 소유 여부가 영향을 주고 있는지 살펴볼 수 있습니다.
물론 가족사진이나 기념품처럼 시장가격으로 평가할 필요가 없는 물건도 있습니다.
모든 소유물을 경제적인 기준으로 정리해야 한다는 의미는 아닙니다.
오히려 개인적인 의미가 있는 물건과 단순히 아까워서 가지고 있는 물건을 구분하는 데 이 질문을 활용할 수 있습니다.
내 물건의 가치를 객관적으로 보고 싶다면 시장을 확인해야 한다
중고 물건을 판매할 때 구입 당시 가격만 기억하면 현재 가치를 판단하기 어렵습니다.
제품의 연식과 상태가 달라졌고 새 제품의 가격도 변했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비슷한 상태의 제품이 실제로 어느 정도 가격에서 거래되는지 확인하면 외부 기준을 만들 수 있습니다.
앞선 글에서 다룬 앵커링 효과와도 연결됩니다.
내가 처음 지불했던 30만 원이 강한 기준점으로 남아 있으면 현재 중고가격 10만 원이 지나치게 낮게 느껴질 수 있습니다.
하지만 현재 시장에서 비슷한 제품이 10만 원 안팎에 거래되고 있다면 과거의 구매가격과 현재의 교환가치를 따로 볼 필요가 있습니다.
소유자의 기억이 아니라 현재 시장의 선택지를 기준으로 다시 보는 것입니다.
소유는 물건의 기능뿐 아니라 바라보는 방식까지 바꿀 수 있다
우리는 자신이 가진 물건에 대해 다른 사람보다 많은 정보를 가지고 있습니다.
어디에서 구입했는지, 얼마나 조심해서 사용했는지, 어떤 순간에 유용했는지도 알고 있습니다.
따라서 내 물건을 더 가치 있게 느끼는 것이 언제나 비합리적이라고 단정할 수는 없습니다.
개인에게만 존재하는 추억과 의미도 분명한 가치가 될 수 있습니다.
다만 시장에서 다른 사람과 거래하거나 필요 없는 물건을 정리할 때는 내가 느끼는 가치와 다른 사람이 평가하는 가치가 같지 않을 수 있다는 점을 알아둘 필요가 있습니다.
보유효과를 이해하면 "왜 나는 이 가격 이하로 팔기 싫은가?"라는 질문도 조금 다르게 바라볼 수 있습니다.
제품의 실제 활용 가치 때문인지, 과거에 비싸게 구입했기 때문인지, 아니면 단순히 현재 내 것이라는 사실이 아깝게 느껴지는지를 나누어 생각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결국 보유효과가 보여주는 것은 단순합니다.
사람에게 소유란 물건을 가지고 있는 상태에 그치지 않고 그 물건의 가치를 판단하는 기준 자체를 바꿀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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