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알고 있으니 상대도 쉽게 이해할 거라고 생각하는 이유, 지식의 저주란 무엇일까?


누군가에게 처음 가는 장소를 설명한다고 생각해 보겠습니다.

"큰 사거리에서 카페 있는 쪽으로 들어오면 돼요. 거기서 조금만 걸으면 익숙한 건물 하나 보이는데 바로 옆이에요."

설명하는 사람에게는 꽤 정확한 안내처럼 느껴질 수 있습니다. 카페도 알고 있고, 건물도 알고 있으며, 주변 모습도 머릿속에 선명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그곳에 한 번도 가본 적 없는 사람에게는 이야기가 달라집니다.

어느 카페인지, '조금'이 어느 정도인지, 익숙한 건물이 무엇인지 알 수 없습니다.

설명하는 사람은 이미 알고 있기 때문에 상대가 무엇을 모르는지 알아차리기 어려웠던 것입니다.

이처럼 어떤 정보를 알고 난 뒤에는 그 정보를 모르는 사람의 관점에서 생각하기 어려워지는 경향을 흔히 지식의 저주(Curse of Knowledge)라고 부릅니다.

이 현상은 누군가에게 설명할 때뿐 아니라 업무 인수인계, 제품 사용법, 글쓰기, 공부, 일상적인 대화에서도 발견할 수 있습니다.

한번 알게 된 것은 다시 모르는 상태로 돌아가기 어렵다

간단한 앱을 오랫동안 사용했다고 생각해 보겠습니다.

매일 사용하는 사람에게는 메뉴 위치가 너무나 익숙합니다.

파일을 저장하려면 어디를 눌러야 하는지, 설정은 어디에 있는지 고민하지 않아도 됩니다.

그런데 처음 사용하는 사람에게 설명할 때 문제가 생길 수 있습니다.

"설정에서 바꾸면 돼요."

익숙한 사용자에게는 충분한 설명입니다.

하지만 초보자는 설정 메뉴가 어디에 있는지부터 모를 수 있습니다.

이미 사용법을 알고 있는 사람은 메뉴를 찾는 과정 자체를 더 이상 어려운 단계라고 생각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저라면 이런 상황에서 설명을 듣는 사람이 다시 질문했다는 이유로 "이것도 모르나?"라고 생각하기보다 내 설명에서 어떤 단계가 생략되었는지 먼저 확인해 보겠습니다.

지식의 저주가 흥미로운 이유는 기억의 한계와 관련이 있다

우리는 무언가를 배우기 전의 자신을 정확하게 복원하기 어렵습니다.

처음에는 어려웠던 개념도 익숙해지면 당연하게 느껴집니다.

처음 배울 때 어디에서 막혔는지도 시간이 지나면서 희미해질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처음 사진 파일을 컴퓨터에서 정리할 때는 폴더를 만드는 방법부터 헷갈렸던 사람도 몇 년 동안 반복하면 자연스럽게 처리할 수 있습니다.

그러다 다른 사람에게 방법을 알려줄 때 이렇게 말할 수 있습니다.

"연도별로 폴더 만들어서 옮기면 끝이에요."

틀린 설명은 아닙니다.

하지만 처음 하는 사람에게는 아직 질문이 남아 있습니다.

새 폴더는 어떻게 만드는지, 파일을 여러 개 선택하려면 어떻게 하는지, 연도는 어떤 기준으로 나누는지 알지 못할 수 있습니다.

전문가에게는 하나의 단계가 초보자에게는 여러 단계일 수 있습니다.

설명서가 어렵게 느껴지는 이유도 여기에서 찾을 수 있다

제품 설명서를 읽다가 문장은 분명 한국어인데 무슨 뜻인지 이해하기 어려웠던 경험이 있을 수 있습니다.

작성자는 제품의 구조와 기능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특정 용어나 절차가 자연스럽게 느껴질 수 있습니다.

반면 처음 제품을 사용하는 사람에게는 용어 자체가 낯섭니다.

예를 들어 설명서에 "동기화 후 기본 프로필을 활성화합니다"라고 적혀 있다고 해보겠습니다.

작성자에게는 정확한 문장일 수 있습니다.

하지만 처음 사용하는 사람은 동기화가 무엇인지, 어디에서 실행하는지, 기본 프로필은 어느 화면에 있는지 모를 수 있습니다.

좋은 설명은 정확한 내용을 담는 것만으로 완성되지 않습니다.

읽는 사람이 현재 알고 있는 지점에서 출발할 수 있어야 합니다.

업무 인수인계에서 '당연한 과정'이 가장 쉽게 빠진다

지식의 저주를 특히 쉽게 발견할 수 있는 상황이 인수인계입니다.

오랫동안 반복한 업무는 과정이 자동화되어 있습니다.

파일을 열고, 자료를 확인하고, 특정 형식으로 정리한 다음 저장합니다.

매일 하던 사람에게는 특별히 설명할 내용이 없어 보입니다.

그래서 인수인계 문서에 이렇게 적을 수 있습니다.

"자료 확인 후 기존 방식대로 정리하여 공유 폴더에 저장."

작성자에게는 한 문장으로 충분합니다.

하지만 처음 업무를 맡은 사람은 여러 가지를 물어야 합니다.

어떤 자료를 확인해야 하는지, 기존 방식이 무엇인지, 파일 이름은 어떻게 정하는지, 공유 폴더의 정확한 위치는 어디인지 알 수 없기 때문입니다.

저라면 인수인계 자료를 만들 때 내가 없어도 처음 보는 사람이 실행할 수 있는가를 기준으로 다시 읽어보겠습니다.

익숙한 용어를 사용하는 순간 설명의 난도가 올라갈 수 있다

어떤 분야를 오래 접하면 그 분야에서 사용하는 단어가 일상어처럼 느껴집니다.

그래서 설명하면서 전문적인 표현을 사용하고 있다는 사실조차 알아차리지 못할 수 있습니다.

컴퓨터에 익숙한 사람에게 '백업', '동기화', '캐시' 같은 표현은 자연스러울 수 있습니다.

하지만 모든 사람이 같은 의미로 이해하는 것은 아닙니다.

그렇다고 모든 용어를 무조건 쉬운 단어로 바꿀 필요는 없습니다.

정확한 용어를 알아야 하는 상황도 있기 때문입니다.

대신 처음 등장할 때 짧게 의미를 설명하면 됩니다.

예를 들어 "백업, 즉 원본에 문제가 생겼을 때를 대비해 별도의 복사본을 만들어 두는 것"처럼 연결할 수 있습니다.

한 번 정의한 뒤에는 원래 용어를 사용해도 이해하기 훨씬 쉬워집니다.

글을 쓸 때도 독자가 알고 있다고 가정하기 쉽다

정보형 글을 작성할 때도 같은 문제가 생깁니다.

작성자는 글을 쓰기 전에 이미 자료를 여러 번 읽었습니다.

관련 용어도 익숙해졌고 개념 사이의 관계도 알고 있습니다.

그러다 보니 글의 중간 단계가 빠질 수 있습니다.

A를 설명한 다음 바로 C로 넘어가는 것입니다.

작성자 머릿속에는 자연스럽게 B가 연결되어 있기 때문에 문제가 보이지 않습니다.

하지만 처음 읽는 사람에게는 갑자기 이야기가 뛰어넘은 것처럼 느껴집니다.

저는 이런 글을 볼 때 단순히 문장이 어려운지보다 앞 문장을 읽은 것만으로 다음 문장을 이해할 수 있는지 살펴보는 방식이 유용하다고 생각합니다.

어려운 개념도 연결 과정이 충분하면 이해할 수 있습니다.

반대로 쉬운 단어만 사용해도 중간 설명이 빠지면 글은 어려워집니다.

지식의 저주와 사후확신편향은 다르다

지식의 저주는 앞에서 다룬 사후확신편향과 혼동할 수 있습니다.

두 현상 모두 이미 알고 있는 정보가 판단에 영향을 준다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하지만 중심은 다릅니다.

사후확신편향은 결과를 알고 난 뒤 그 결과가 처음부터 예상 가능했던 것처럼 느껴지는 현상입니다.

"결과를 보니 원래 그렇게 될 것 같았어."

라는 판단이 대표적입니다.

반면 지식의 저주는 내가 가진 지식을 상대방도 어느 정도 알고 있을 것처럼 생각하거나, 그 정보를 모르는 상태를 상상하기 어려운 현상입니다.

쉽게 구분하면 사후확신편향은 과거의 예측 가능성에 관한 문제이고, 지식의 저주는 나와 다른 사람 사이의 지식 차이를 제대로 고려하기 어려운 문제라고 볼 수 있습니다.

허위합의 효과와도 비슷하지만 초점이 다르다

허위합의 효과는 자신의 생각이나 선택, 선호가 다른 사람들에게도 비교적 일반적일 것이라고 추정하는 경향입니다.

예를 들어 자신이 특정 정리 방식을 편리하게 사용한다고 해서 대부분의 사람도 같은 방법을 선호할 것이라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지식의 저주는 선호보다 정보의 차이에 초점을 둡니다.

"나는 이 방법을 좋아하니까 다른 사람도 좋아할 것이다"라면 허위합의 효과와 연결해 볼 수 있습니다.

"나는 이 방법을 아니까 상대도 이 정도는 알 것이다"라면 지식의 저주와 더 가깝습니다.

실제 대화에서는 두 현상이 함께 나타날 수도 있습니다.

상대가 이해하지 못했다고 설명을 더 어렵게 만들 때가 있다

누군가에게 설명했는데 상대가 이해하지 못하면 같은 내용을 더 자세하게 설명하려고 합니다.

그런데 여기서 의외의 문제가 생길 수 있습니다.

기존에 사용했던 어려운 용어를 더 많이 사용하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처음 설명이 "파일을 클라우드와 동기화하세요"였다고 해보겠습니다.

상대가 이해하지 못하자 "계정에 로그인해서 자동 동기화 옵션을 활성화하면 됩니다"라고 설명합니다.

설명하는 사람에게는 더 구체적입니다.

하지만 상대는 '계정', '자동 동기화', '활성화'가 어느 화면에 있는지 여전히 모를 수 있습니다.

이럴 때 필요한 것은 정보량을 늘리는 것이 아니라 설명의 출발점을 뒤로 옮기는 것일 수 있습니다.

"지금 어떤 화면이 보이나요?"

이 질문부터 시작하면 상대가 어디까지 알고 있는지 확인할 수 있습니다.

초보자에게 직접 사용해 보게 하면 빠진 단계가 보인다

자신이 만든 설명을 자신이 검토하는 데에는 한계가 있습니다.

이미 답을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가능하다면 해당 내용을 잘 모르는 사람에게 실제로 따라 해보게 하는 방법이 유용합니다.

예를 들어 수납장 조립 방법을 정리했다고 해보겠습니다.

작성자는 설명만 읽어도 어디에 어떤 부품을 사용하는지 압니다.

하지만 처음 보는 사람은 두 부품의 모양이 비슷해서 구분하지 못할 수 있습니다.

실제로 따라 해보는 과정에서 질문이 나옵니다.

"긴 나사와 짧은 나사는 어디에서 구분하나요?"

작성자는 그제야 설명에서 중요한 단계가 빠졌다는 사실을 발견합니다.

사용자의 질문은 설명이 실패했다는 증거라기보다 작성자가 보지 못했던 정보의 빈틈을 알려주는 자료가 될 수 있습니다.

길을 알려줄 때는 내가 보는 풍경보다 상대가 볼 수 있는 풍경이 중요하다

길 안내를 할 때도 지식의 차이가 분명하게 드러납니다.

동네에 오래 산 사람은 이렇게 설명할 수 있습니다.

"예전에 빵집 있던 자리에서 오른쪽으로 가세요."

오랫동안 그 지역에 살았다면 아주 정확한 기준점입니다.

하지만 처음 방문한 사람에게는 아무런 의미가 없습니다.

반대로 건물 번호, 현재 있는 상점의 간판, 교차로 이름처럼 상대도 확인할 수 있는 정보를 사용하면 안내가 쉬워집니다.

설명에서 중요한 것은 내가 알고 있는 정보의 양이 아닙니다.

나와 상대가 함께 확인할 수 있는 기준점을 찾는 것입니다.

전문가일수록 항상 설명을 못하는 것은 아니다

지식의 저주라는 말을 듣고 "전문가는 초보자를 이해하지 못한다"고 단순화할 필요는 없습니다.

많은 전문가는 경험을 통해 초보자가 어디에서 어려움을 느끼는지 잘 알고 있습니다.

오히려 다양한 질문을 반복해서 받아본 사람은 초보자의 관점을 상당히 정확하게 파악할 수도 있습니다.

중요한 차이는 지식의 양보다 설명 과정에 있습니다.

자신이 알고 있는 내용을 그대로 전달하는 사람과 상대가 알고 있는 수준을 먼저 확인하는 사람은 설명 방식이 달라집니다.

전문지식이 많다는 사실 자체가 문제가 아니라 그 지식이 없는 상태를 의식적으로 고려하지 않는 것이 문제가 될 수 있습니다.

저라면 설명을 만든 뒤 '숨은 단계'를 찾아보겠습니다

어떤 방법을 다른 사람에게 설명해야 한다면 저는 완성된 설명을 한 번 더 잘게 나누어 보는 방식이 유용하다고 생각합니다.

예를 들어 "파일을 정리해서 공유한다"는 작업이 있다고 해보겠습니다.

겉으로는 간단하지만 실제로는 여러 단계가 숨어 있습니다.

어떤 파일을 찾는지, 어떤 기준으로 정리하는지, 파일 이름을 어떻게 만드는지, 어느 폴더에 저장하는지, 누구에게 어떤 방식으로 알려주는지가 포함될 수 있습니다.

익숙한 사람에게는 하나의 행동이지만 처음 하는 사람에게는 다섯 개의 행동일 수 있습니다.

그래서 설명을 검토할 때 이런 질문을 해볼 수 있습니다.

"이 단계 바로 앞에서 상대가 반드시 알고 있어야 하는 것은 무엇일까?"

이 질문을 반복하면 생략된 전제조건을 찾기가 쉬워집니다.

설명이 길다고 반드시 친절한 것은 아니다

지식의 저주를 피하겠다고 모든 내용을 처음부터 끝까지 자세히 설명하면 또 다른 문제가 생길 수 있습니다.

정보가 너무 많아지는 것입니다.

이미 알고 있는 내용까지 모두 설명하면 핵심을 찾기 어려울 수 있습니다.

따라서 좋은 설명은 단순히 긴 설명이 아닙니다.

상대가 알고 있는 부분은 빠르게 넘어가고 모르는 부분에서는 충분한 맥락을 제공해야 합니다.

이를 위해서는 먼저 상대의 현재 상태를 확인하는 것이 좋습니다.

"이 기능을 사용해 본 적이 있나요?"

"여기까지는 알고 계신가요?"

짧은 질문 하나가 불필요한 설명을 크게 줄여줄 수 있습니다.

상대의 질문이 너무 기초적으로 느껴질 때 확인할 것

누군가 아주 기본적인 내용을 질문하면 설명하는 사람은 답답함을 느낄 수도 있습니다.

특히 자신에게 너무 익숙한 내용이라면 더욱 그렇습니다.

하지만 그 순간이 지식의 저주를 확인하기 좋은 시점일 수 있습니다.

저라면 상대의 질문이 예상보다 기초적으로 느껴질 때 이렇게 생각해 보겠습니다.

"내가 당연하다고 생각한 정보 가운데 이 사람에게 전달되지 않은 것은 무엇일까?"

상대의 이해력이 부족하다고 바로 결론 내리는 것보다 훨씬 실용적인 질문입니다.

실제로 한 단계만 보충하면 이후 내용을 빠르게 이해하는 경우도 있기 때문입니다.

잘 설명한다는 것은 많이 아는 것과 조금 다른 능력이다

지식이 많으면 정확한 설명을 만드는 데 유리합니다.

하지만 그것만으로 충분하지는 않습니다.

설명을 듣는 사람에게 필요한 정보의 순서를 구성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처음 접하는 사람은 어떤 단어부터 알아야 하는지, 어느 단계에서 예시가 필요한지, 무엇을 직접 확인해야 하는지 생각해야 합니다.

그래서 어떤 분야를 깊이 이해하는 능력과 그 분야를 처음 접하는 사람에게 설명하는 능력은 완전히 같지 않습니다.

좋은 설명자는 자신이 아는 것을 보여주는 사람이라기보다 상대가 아직 모르는 부분을 찾아 연결해 주는 사람에 가깝습니다.

'이 정도는 알겠지'라는 순간을 의심해 보기

지식의 저주는 특별한 전문가에게만 나타나는 현상이 아닙니다.

우리가 매일 사용하는 앱을 부모님이나 친구에게 설명할 때도 나타날 수 있습니다.

자주 가는 장소의 길을 알려줄 때도 생길 수 있습니다.

오랫동안 해온 업무를 다른 사람에게 넘길 때도 마찬가지입니다.

이미 알고 있는 사람에게는 너무 자연스러운 과정이라 설명해야 할 내용으로조차 느껴지지 않는 것이 가장 큰 이유입니다.

그래서 저라면 누군가에게 설명할 때 이런 생각이 드는 순간을 한 번 더 확인해 보겠습니다.

"이 정도는 당연히 알겠지."

바로 그 부분이 상대에게는 가장 필요한 설명일 수도 있습니다.

지식의 저주를 이해하는 목적은 모든 것을 지나치게 쉽게 설명하는 데 있지 않습니다. 내가 알고 있다는 사실 때문에 상대가 무엇을 모르는지 놓치고 있지는 않은지 확인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내 머릿속에서 자연스럽게 연결되는 두 단계가 상대에게도 자연스럽게 연결된다고 보장할 수는 없습니다.

한 단계만 더 보여주고, 낯선 용어를 한 번 정의하고, 상대가 어디까지 알고 있는지 먼저 물어보는 것만으로도 설명은 크게 달라질 수 있습니다.

결국 잘 아는 사람에게 필요한 능력은 지식을 더 많이 보여주는 것만이 아닙니다.

내가 이미 알고 있는 것을 잠시 내려놓고, 처음 접하는 사람의 출발점에서 다시 바라보는 능력도 그만큼 중요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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