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접 바꾸는 것보다 그대로 두는 쪽이 덜 부담스러운 이유, 행동경제학에서 생략 편향이란 무엇일까?


컴퓨터에서 오래된 파일을 정리한다고 생각해 보겠습니다.

분명 몇 년 동안 한 번도 열어보지 않은 파일이 많습니다. 필요 없는 것 같지만 삭제 버튼을 누르려니 조금 망설여집니다.

"혹시 나중에 필요하면 어떡하지?"

결국 삭제하지 않고 그대로 둡니다.

몇 달 뒤에도 파일은 여전히 사용하지 않았지만 이상하게 마음은 편합니다. 직접 삭제해서 문제가 생긴 것은 아니기 때문입니다.

반대로 파일을 삭제한 다음 나중에 필요해진다면 어떨까요?

"그때 괜히 지웠네."

후회가 훨씬 구체적으로 느껴질 수 있습니다.

이처럼 결과가 비슷하더라도 직접 행동해서 발생한 결과를 아무 행동을 하지 않아 발생한 결과보다 더 부담스럽게 받아들이고, 행동하지 않는 쪽을 선호하는 경향을 생략 편향(Omission Bias)이라고 합니다.

생략 편향은 행동경제학과 의사결정 연구에서 행동과 비행동을 사람들이 어떻게 다르게 평가하는지 살펴볼 때 등장하는 개념입니다.

무언가를 하지 않는 것도 실제로는 하나의 선택일 수 있다

우리는 흔히 행동한 것만 선택이라고 생각합니다.

새로운 앱으로 바꾸면 선택한 것입니다.

기존 앱을 그대로 사용하면 아무것도 하지 않은 것처럼 느껴집니다.

하지만 실제로는 기존 앱을 계속 사용하기로 한 결과가 남습니다.

파일을 삭제하는 것도 결정이고 삭제하지 않는 것도 결정입니다.

오래된 물건을 정리하는 것도 결정이고 계속 보관하는 것도 결정입니다.

그런데 심리적으로는 두 선택이 동일하게 느껴지지 않을 수 있습니다.

직접 바꾼 뒤 문제가 발생하면 내가 그 결과를 만들었다는 느낌이 강합니다.

반대로 아무것도 하지 않은 상태에서 문제가 발생하면 외부 상황 때문에 그렇게 된 것처럼 느껴질 수도 있습니다.

이 차이가 행동하지 않는 선택을 상대적으로 편하게 만들 수 있습니다.

삭제 버튼을 누르는 일이 유난히 어렵게 느껴지는 이유

사진이나 문서 파일을 정리할 때 생략 편향을 떠올려 볼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비슷한 사진이 열 장 있다고 해보겠습니다.

실제로 필요한 것은 한두 장뿐입니다.

하지만 나머지를 삭제하려고 하면 이런 생각이 듭니다.

"나중에 이 사진이 더 마음에 들면 어떡하지?"

그래서 모두 남겨둡니다.

파일을 그대로 두면 당장 발생하는 문제는 크지 않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런 결정이 반복되면 저장 공간이 복잡해지고 필요한 파일을 찾는 시간이 늘어날 수 있습니다.

즉 행동하지 않는 선택에도 비용이 존재할 수 있습니다.

다만 그 비용은 바로 나타나지 않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덜 눈에 띌 뿐입니다.

생략 편향과 현상유지 편향은 어떻게 다를까?

앞에서 살펴본 현상유지 편향과 생략 편향은 상당히 비슷해 보입니다.

둘 다 기존 상태를 그대로 유지하는 행동으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초점은 조금 다릅니다.

현상유지 편향은 현재 상태나 기존 선택을 변경하지 않으려는 경향에 초점을 둡니다.

생략 편향은 직접 행동해서 생긴 결과와 행동하지 않아서 생긴 결과를 다르게 평가하는 경향에 더 가깝습니다.

예를 들어 익숙하다는 이유로 기존 앱을 계속 사용한다면 현상유지 편향과 관련해서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반면 새로운 앱으로 바꿨다가 문제가 생기면 내가 괜히 바꾼 것 같아 걱정되어 변경하지 않는다면 생략 편향의 관점에서도 살펴볼 수 있습니다.

실제 상황에서는 두 경향이 함께 나타날 수 있습니다.

행동 편향과는 반대 방향처럼 보일 수 있다

직전에 살펴본 행동 편향에서는 기다리는 것보다 무언가를 하는 쪽이 마음 편하게 느껴질 수 있다고 설명했습니다.

생략 편향에서는 오히려 행동하지 않는 쪽을 선호할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둘 중 어느 것이 맞는 걸까요?

둘 다 상황에 따라 나타날 수 있습니다.

문제가 발생해 무언가 해야 한다는 압박이 강한 상황에서는 행동 편향이 나타날 수 있습니다.

반대로 직접 행동한 뒤 좋지 않은 결과가 생겼을 때 책임이나 후회를 크게 느끼는 상황에서는 행동하지 않는 쪽이 더 편하게 느껴질 수 있습니다.

사람의 판단은 언제나 한 방향으로 움직이지 않습니다.

상황이 어떤 선택을 더 두드러지게 만드는지에 따라 다른 경향이 나타날 수 있습니다.

새로운 방법으로 바꿨다가 실패하면 후회가 더 클 수 있다

오랫동안 사용하던 정리 방법이 있다고 생각해 보겠습니다.

조금 불편하지만 익숙합니다.

그러던 중 더 효율적으로 보이는 새로운 방법을 발견했습니다.

바꿔볼까 고민하다가 이런 생각이 듭니다.

"괜히 바꿨다가 더 불편하면 어떡하지?"

결국 기존 방법을 유지합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기존 방법에도 이미 불편함이 있다는 점입니다.

그런데 기존 방식의 불편함은 익숙하기 때문에 특별한 결정의 결과처럼 느껴지지 않을 수 있습니다.

반면 새로운 방법으로 바꾼 뒤 생기는 불편은 내가 직접 내린 결정과 연결됩니다.

"내가 바꿔서 이렇게 됐다."

이 차이 때문에 변경의 위험을 더 크게 느낄 수 있습니다.

아무것도 하지 않았을 때의 비용은 쉽게 기록되지 않는다

직접 행동하면 변화가 눈에 보입니다.

물건을 옮겼습니다.

파일을 삭제했습니다.

새로운 도구를 사용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래서 결과를 행동과 연결하기 쉽습니다.

반면 행동하지 않았을 때 발생한 비용은 잘 보이지 않을 수 있습니다.

오래된 파일을 그대로 두어서 매번 필요한 문서를 찾는 데 시간이 조금 더 걸렸다고 해보겠습니다.

하루에 몇 초씩 발생하는 불편은 "파일을 삭제하지 않았기 때문에 생긴 결과"라고 생각하기 어렵습니다.

그냥 원래 그런 것으로 받아들이기 쉽습니다.

저라면 어떤 선택을 계속 미루고 있다면 바꾸었을 때 생길 위험뿐 아니라 바꾸지 않았을 때 계속 발생하는 비용도 따로 적어보겠습니다.

후회회피와도 연결해서 생각할 수 있다

생략 편향은 앞에서 다룬 후회회피와도 관련이 있습니다.

직접 행동한 뒤 좋지 않은 결과가 나오면 "하지 말걸"이라는 후회가 생길 수 있습니다.

그래서 아예 행동하지 않는 선택을 할 수도 있습니다.

예를 들어 책상 배치를 바꿀까 고민한다고 해보겠습니다.

현재 배치가 완전히 만족스럽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바꾼 뒤 더 불편해지면 다시 원래대로 돌려야 합니다.

이 과정이 번거롭게 느껴져 변경하지 않습니다.

이때 실제로 새로운 배치가 나쁠지는 아직 모릅니다.

예상되는 후회와 번거로움이 행동하지 않는 선택에 영향을 준 것입니다.

다만 생략 편향과 후회회피가 완전히 같은 개념은 아닙니다.

후회회피는 미래에 느낄 후회를 피하려는 의사결정에 초점을 두고, 생략 편향은 행동과 비행동에서 발생한 결과를 서로 다르게 평가하는 데 초점을 둡니다.

기본값이 강력한 이유와도 연결될 수 있다

어떤 서비스에 여러 설정이 있다고 생각해 보겠습니다.

처음부터 설정되어 있는 상태가 있고 사용자가 직접 변경할 수도 있습니다.

많은 사람이 기본 설정을 그대로 사용한다면 앞에서 다룬 기본값 효과를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변경 후 문제가 생겼을 때 책임을 직접 느끼고 싶지 않아 설정을 그대로 둔다면 생략 편향도 관련될 수 있습니다.

"기본 설정이니까 그냥 두자."

이 말에는 여러 심리가 섞여 있을 수 있습니다.

설정을 바꾸는 과정이 귀찮을 수도 있습니다.

현재 상태가 익숙할 수도 있습니다.

직접 바꿨다가 문제가 생기는 것이 부담스러울 수도 있습니다.

겉으로 같은 행동이라도 이유는 다를 수 있습니다.

물건을 버리지 않는 결정에도 숨은 비용이 있다

옷장을 정리할 때도 비슷한 상황이 생깁니다.

오랫동안 입지 않은 옷이 있습니다.

앞으로도 입을 가능성이 높아 보이지 않습니다.

하지만 버리거나 정리하려고 하면 아깝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래서 다시 옷장에 넣습니다.

이 선택은 당장 안전하게 느껴집니다.

나중에 필요해져도 옷이 남아 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보관에도 비용이 있습니다.

공간을 차지하고 다른 옷을 찾기 어렵게 만들 수 있습니다.

정리할 때마다 다시 판단해야 할 수도 있습니다.

물론 사용하지 않는다고 무조건 버려야 한다는 뜻은 아닙니다.

중요한 것은 보관 역시 아무 비용도 없는 선택은 아니라는 점입니다.

되돌릴 수 있는 선택까지 지나치게 부담스러워할 필요는 없다

모든 행동이 돌이킬 수 없는 결과를 만드는 것은 아닙니다.

책상 위 물건의 위치를 바꾸는 일은 마음에 들지 않으면 다시 옮길 수 있습니다.

새로운 메모 방식을 며칠 사용해 보는 것도 이전 방식으로 돌아갈 수 있습니다.

이런 선택에서도 실패를 크게 걱정하면 실험할 기회를 놓칠 수 있습니다.

저라면 결정을 내릴 때 먼저 되돌릴 수 있는 선택인지 아닌지 구분해 보겠습니다.

되돌릴 수 있는 선택이라면 완벽한 확신이 생길 때까지 기다리기보다 작은 범위에서 시험해 볼 수 있습니다.

반대로 복구가 어렵거나 중요한 자료가 관련된 결정이라면 충분한 확인 과정이 필요합니다.

모든 행동을 같은 무게로 생각할 필요는 없습니다.

파일을 바로 삭제하기 어렵다면 중간 단계를 만들 수 있다

생략 편향을 이해했다고 해서 망설이는 모든 행동을 즉시 실행할 필요는 없습니다.

오히려 행동과 비행동 사이에 중간 선택지를 만드는 것이 현실적일 때가 있습니다.

예를 들어 오래된 파일을 바로 삭제하기 어렵다면 '삭제 후보' 폴더를 만들 수 있습니다.

한동안 사용하지 않았다면 그때 최종적으로 정리하는 방식입니다.

옷도 마찬가지입니다.

바로 처분하기 어렵다면 별도의 공간에 잠시 분리해 두고 실제로 다시 찾는지 확인할 수 있습니다.

이 방식의 장점은 결정을 무한정 미루지 않으면서도 즉시 되돌릴 수 없는 행동을 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저라면 '행동했을 때'와 '아무것도 하지 않았을 때'를 같은 표에 놓겠습니다

결정을 고민할 때 우리는 행동의 결과만 예상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파일을 지웠다가 필요하면 어떻게 하지?"

"배치를 바꿨다가 불편하면 어떻게 하지?"

"새로운 방법을 사용했다가 시간이 더 걸리면 어떻게 하지?"

저라면 여기서 질문 하나를 더 추가하겠습니다.

"그대로 두면 어떤 일이 계속 발생하지?"

파일을 남겨두면 저장 공간과 검색의 복잡성이 유지됩니다.

불편한 배치를 그대로 두면 매일 같은 동선을 반복해야 합니다.

현재 방법을 유지하면 기존 문제도 그대로 남습니다.

행동의 위험과 비행동의 위험을 같은 기준에서 비교해야 선택의 실제 차이가 보입니다.

직접 바꿔서 생긴 실패가 더 선명하게 기억될 수 있다

예전에 무언가를 변경했다가 불편해진 경험이 있다면 다음 결정에도 영향을 줄 수 있습니다.

"지난번에도 괜히 바꿨다가 다시 원래대로 돌렸잖아."

이 기억은 상당히 구체적입니다.

반면 아무것도 바꾸지 않아 계속 겪었던 작은 불편은 하나의 사건으로 기억되지 않을 수 있습니다.

매일 몇 분씩 불편했던 경험은 특별한 실패처럼 느껴지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과거 경험을 비교할 때도 눈에 띄는 실패 사건만 보는 것보다 누적된 불편을 함께 생각하는 편이 좋습니다.

비행동을 선택했다면 그 선택도 나중에 평가해 볼 수 있다

아무것도 바꾸지 않기로 결정했다면 일정 시간이 지난 뒤 결과를 확인해 볼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현재 수납 방식을 한 달 더 유지하기로 했다면 한 달 뒤 실제 불편이 줄었는지 확인합니다.

계속 문제가 반복된다면 유지하는 선택을 다시 검토할 이유가 생깁니다.

이렇게 하면 '그대로 둔다'는 선택이 무기한 자동 연장되는 것을 막을 수 있습니다.

저라면 중요한 문제에서 현 상태를 유지하기로 했다면 다음 검토 시점을 정해두겠습니다.

"지금은 바꾸지 않지만 2주 뒤 다시 확인한다."

이 문장은 단순한 미루기와 의도적인 유지 결정을 구분하는 데 도움이 됩니다.

행동하지 않았다고 책임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생략 편향에서 생각해 볼 만한 핵심은 책임의 느낌과 실제 결과가 다를 수 있다는 점입니다.

직접 변경해서 문제가 생기면 내가 원인을 만들었다는 느낌이 강합니다.

반대로 아무것도 하지 않아 기존 문제가 계속되면 책임감은 상대적으로 약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결과의 관점에서는 두 선택 모두 영향을 줍니다.

바꾸는 것도 결정입니다.

바꾸지 않는 것도 결정입니다.

그래서 중요한 선택일수록 "내가 직접 무엇을 했는가?"뿐 아니라 "아무것도 하지 않기로 한 선택이 어떤 결과를 만들고 있는가?"까지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괜히 건드렸다'는 후회와 '왜 진작 안 바꿨을까'라는 후회

우리는 행동한 뒤 실패했을 때의 후회를 쉽게 상상합니다.

"괜히 바꿨어."

"그냥 둘걸."

반대로 행동하지 않았을 때 생길 수 있는 후회는 결정하는 순간에는 상대적으로 잘 떠오르지 않을 수 있습니다.

시간이 지난 뒤에야 이렇게 생각합니다.

"이렇게 간단한 거였으면 왜 진작 바꾸지 않았지?"

두 종류의 후회 가운데 어느 쪽이 항상 더 크다고 말할 수는 없습니다.

그래서 미래의 감정을 정확히 예측하려 하기보다 현재 확인할 수 있는 장단점을 비교하는 것이 더 실용적입니다.

저라면 '아무것도 하지 않는 선택'에도 이름을 붙이겠습니다

어떤 결정을 계속 미루고 있다면 자신은 아직 선택하지 않았다고 느낄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동안 기존 상태는 계속 유지됩니다.

그래서 저는 이런 상황을 바라볼 때 표현을 조금 바꾸는 방식이 유용하다고 생각합니다.

"아직 결정하지 않았다" 대신,

"지금은 기존 상태를 유지하기로 선택하고 있다."

이렇게 표현하면 비행동도 하나의 선택이라는 사실이 더 분명해집니다.

그러면 비교도 쉬워집니다.

변경했을 때 얻는 것과 잃는 것, 유지했을 때 얻는 것과 잃는 것을 같은 기준으로 볼 수 있기 때문입니다.

생략 편향을 이해하는 목적은 무조건 행동하는 사람이 되는 데 있지 않습니다.

때로는 아무것도 바꾸지 않는 것이 가장 좋은 선택일 수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행동해서 생긴 결과만 내 책임처럼 느끼고, 행동하지 않아 발생한 결과는 판단에서 제외하고 있지는 않은지 확인하는 것입니다.

직접 바꾸는 것은 눈에 띕니다.

그대로 두는 것은 눈에 잘 띄지 않습니다.

하지만 둘 다 미래의 상태를 결정합니다.

결국 더 균형 잡힌 판단을 위해 필요한 질문은 하나입니다.

"바꾸면 어떤 일이 생길까?"뿐 아니라 "바꾸지 않으면 무엇이 계속될까?"

두 질문을 함께 놓고 볼 때 우리는 행동과 비행동을 조금 더 공평한 기준에서 비교할 수 있습니다.

댓글 쓰기

0 댓글

신고하기

이 블로그 검색

프로필

이미지alt태그 입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