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가전제품을 사려고 후기를 찾아보다가 어느 정도 정보가 쌓이면 이런 생각이 들 때가 있습니다.
"이 정도 알아봤으면 이제 거의 다 알겠는데?"
저도 관심 있는 제품을 비교할 때 비슷한 경험이 있습니다. 처음에는 낯선 용어가 많아서 하나씩 찾아보지만 며칠 동안 후기와 비교 영상을 보다 보면 어느 순간 제품을 꽤 잘 안다는 느낌이 생깁니다.
그런데 조금 더 찾아보면 제가 중요하게 보지 않았던 단점이 나오기도 하고, 처음에는 별 차이가 없다고 생각했던 기능이 실제 사용 환경에서는 꽤 중요한 경우도 있습니다.
알고 있는 정보가 늘어난 것은 맞지만 내가 얼마나 정확하게 알고 있는지에 대한 자신감은 실제 지식보다 더 빠르게 커질 수도 있습니다.
행동경제학과 심리학에서는 자신의 지식이나 능력, 판단의 정확성을 실제보다 높게 평가하는 경향을 과잉확신(Overconfidence)이라는 개념으로 설명합니다.
자신감이 있다는 것과 판단이 정확하다는 것은 다르다
자신감 자체는 나쁜 것이 아닙니다.
매번 자신의 판단을 의심한다면 간단한 결정에도 많은 시간이 필요합니다. 어느 정도 정보를 확인했다면 결정을 내리고 행동하는 것도 필요합니다.
문제는 자신감과 정확성을 같은 것으로 생각할 때입니다.
어떤 답을 90% 확신한다고 해서 실제로 그 답이 맞을 가능성이 반드시 90%인 것은 아닙니다.
예를 들어 처음 가는 장소까지 자동차로 30분이면 도착할 것 같다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평소 이동 경험을 바탕으로 충분히 예상할 수 있는 시간입니다.
하지만 실제로는 주차할 장소를 찾는 시간이나 신호 대기, 예상하지 못한 정체까지 발생할 수 있습니다.
30분이라는 예상 자체보다 "30분이면 충분해"라고 확실하게 생각하면서 다른 가능성을 거의 고려하지 않는 부분에서 과잉확신의 영향을 살펴볼 수 있습니다.
조금 알게 되었을 때 오히려 확신이 빠르게 커질 수 있다
무언가를 처음 배우기 시작하면 처음에는 모르는 것이 많다는 사실을 쉽게 느낍니다.
용어부터 낯설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기본적인 내용을 이해하고 나면 상황이 달라집니다.
처음보다 아는 내용이 많아졌기 때문에 자신감도 생깁니다. 문제는 아직 접하지 못한 내용이 얼마나 많은지는 알기 어렵다는 것입니다.
저도 새로운 프로그램이나 도구를 익힐 때 이런 차이를 느끼는 경우가 있습니다.
기본적인 기능 몇 가지를 사용할 수 있게 되면 처음에는 "생각보다 별거 아니네"라는 느낌이 들기도 합니다. 그런데 실제로 조금 복잡한 작업을 시작하면 몰랐던 기능과 예외 상황이 계속 등장합니다.
처음 생긴 자신감이 틀렸다는 뜻은 아닙니다.
실제로 실력이 늘어난 것도 맞습니다.
다만 아는 것이 늘어나는 속도와 자신감이 커지는 속도가 항상 같지는 않다는 점이 중요합니다.
예상 시간을 짧게 잡는 습관에서도 발견할 수 있다
과잉확신은 자신의 능력을 평가할 때도 나타날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글 하나를 작성하는 데 한 시간이면 충분할 것 같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실제로 시작하면 자료를 다시 확인해야 하고 적절한 표현을 고민하게 됩니다. 작성이 끝난 뒤에는 오탈자도 확인해야 합니다.
결국 예상보다 훨씬 오래 걸립니다.
저도 해야 할 일을 계획할 때 실제 소요시간보다 짧게 잡는 경우가 있습니다. 특히 이전에 해본 일이라면 "이 정도는 금방 하지"라고 생각하기 쉽습니다.
그래서 비슷한 작업을 반복할 때는 머릿속 예상보다 이전에 실제로 얼마나 걸렸는지를 확인하는 방식이 도움이 됩니다.
지난번에도 두 시간이 걸렸는데 이번에는 특별한 이유 없이 40분이면 된다고 예상한다면 계획을 다시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기억 속 자신감보다 실제 기록이 더 좋은 기준이 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성공은 실력으로, 실패는 상황 때문이라고 생각하기 쉽다
어떤 일을 성공적으로 마치면 자신의 판단이 좋았다고 생각하기 쉽습니다.
반대로 결과가 좋지 않으면 외부 상황을 먼저 떠올릴 수 있습니다.
물론 실제로 그런 경우도 많습니다.
좋은 결과가 노력과 능력에서 나온 경우도 있고 예상하지 못한 외부 변수 때문에 일이 실패할 수도 있습니다.
다만 매번 성공은 자신의 능력으로 설명하고 실패는 운이나 환경으로만 설명한다면 자신의 판단 정확도를 실제보다 높게 평가할 가능성이 있습니다.
예를 들어 중고 물건을 예상보다 좋은 가격에 판매했다고 생각해 보겠습니다.
한 번 성공하고 나면 "나는 중고 가격을 꽤 잘 판단하는 것 같다"고 느낄 수 있습니다.
하지만 당시 마침 해당 물건을 찾던 구매자가 있었거나 판매 시기가 좋았을 수도 있습니다.
한 번의 좋은 결과만으로 자신의 판단 능력을 정확하게 평가하기는 어렵습니다.
결과가 좋았다고 과정까지 항상 좋았던 것은 아니다
과잉확신을 생각할 때 결과와 판단 과정을 구분하는 것도 중요합니다.
우산을 가져갈지 고민하다가 "오늘은 절대 비가 안 올 것 같다"고 생각해서 그냥 나갔는데 실제로 비가 오지 않았다고 해보겠습니다.
결과만 보면 판단이 맞았습니다.
그렇다고 날씨를 확인하지 않고 느낌만으로 확신했던 과정까지 항상 좋은 판단이었다고 말하기는 어렵습니다.
반대 상황도 가능합니다.
일기예보를 확인하고 비가 올 가능성이 높아 우산을 가져갔는데 결국 비가 오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결과만 보면 우산을 괜히 들고 다닌 셈이지만 당시 가지고 있던 정보를 기준으로는 충분히 합리적인 선택이었을 수 있습니다.
이런 차이를 구분하지 않으면 우연히 좋은 결과가 나온 판단까지 자신의 실력으로 받아들이기 쉽습니다.
확증편향과 과잉확신은 서로를 강화할 수 있다
앞에서 살펴본 확증편향과 과잉확신은 함께 나타날 수 있습니다.
특정 제품이 가장 좋다고 생각하기 시작했다고 해보겠습니다.
확증편향의 영향을 받으면 자신의 생각과 일치하는 후기가 더 눈에 들어올 수 있습니다.
좋은 정보를 계속 발견하면 "역시 내가 제대로 판단했어"라는 확신도 커집니다.
확신이 커지면 반대되는 정보를 확인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그러면 다시 자신과 비슷한 의견만 남게 됩니다.
이런 과정이 반복되면 처음에는 작은 선호였던 것이 매우 강한 확신으로 바뀔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확신이 강해질수록 오히려 한 번 정도 반대되는 자료를 찾아보는 것이 도움이 됩니다.
경험이 많아져도 틀릴 가능성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경험은 분명 중요한 정보입니다.
같은 일을 여러 번 해본 사람은 처음 하는 사람보다 어떤 문제가 발생할 수 있는지 알고 있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하지만 경험이 많다는 사실과 항상 정확하게 판단한다는 것은 다른 이야기입니다.
오히려 익숙한 일에서는 확인 과정을 생략할 수도 있습니다.
"늘 이렇게 했으니까 이번에도 괜찮겠지"라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저도 자주 하는 작업일수록 설명이나 안내를 제대로 읽지 않고 진행했다가 작은 부분을 다시 수정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처음 하는 일이라면 하나씩 확인했을 텐데 익숙하다는 생각 때문에 오히려 확인을 줄인 것입니다.
경험은 판단을 돕지만 경험에서 생긴 자신감이 점검 과정을 대신하지는 못합니다.
숫자로 예상해 보면 내 확신을 확인하기 쉬워진다
"금방 끝날 것 같다"는 표현은 나중에 맞았는지 확인하기 어렵습니다.
하지만 "한 시간 정도 걸릴 것 같다"고 예상하면 실제 결과와 비교할 수 있습니다.
이런 기록이 쌓이면 자신의 예상 습관도 발견할 수 있습니다.
매번 작업 시간을 30% 정도 짧게 예상하는 사람이라면 다음 계획에서는 여유시간을 추가할 수 있습니다.
제품을 주문할 때 배송기간을 지나치게 낙관적으로 예상하는 습관이 있다면 중요한 일정에서는 하루 정도 여유를 둘 수도 있습니다.
저도 계획을 세울 때 예상과 실제 결과를 비교해 보면 단순히 "이번에는 예상보다 오래 걸렸네"라고 생각할 때보다 반복되는 패턴을 찾기가 쉽습니다.
과잉확신을 줄이는 데 필요한 것은 자신감을 없애는 것이 아니라 내 예상이 실제로 얼마나 정확했는지 확인할 기회를 만드는 것입니다.
'무엇이 나오면 내 생각을 바꿀까?'라고 물어볼 수 있다
자신의 판단에 확신이 생겼을 때 유용한 질문이 하나 있습니다.
"어떤 정보가 나온다면 지금 생각을 바꿀 수 있을까?"
예를 들어 A 제품이 가장 좋다고 확신하고 있다면 가격 차이가 어느 정도 벌어지면 다른 제품을 선택할지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특정 업무 방식이 가장 효율적이라고 생각한다면 어떤 결과가 나왔을 때 다른 방식을 시험할지도 정할 수 있습니다.
아무리 새로운 정보가 나와도 결론을 바꿀 생각이 없다면 이미 정보를 비교하는 단계에서 벗어나 자신의 기존 판단을 지키는 단계가 되었을 가능성이 있습니다.
반대로 판단을 바꿀 조건이 명확하다면 새로운 정보를 조금 더 유연하게 받아들일 수 있습니다.
자신감을 버리는 것이 아니라 작은 오차를 남겨두는 것이 중요하다
과잉확신을 알게 되면 모든 판단에 자신감을 가지면 안 되는 것처럼 느낄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렇게 생각할 필요는 없습니다.
정보를 확인하고 경험을 쌓았다면 어느 정도 확신을 가지고 선택하는 것이 자연스럽습니다.
중요한 것은 자신의 판단에도 틀릴 가능성이 있다는 작은 공간을 남겨두는 것입니다.
저도 계획을 세울 때 "이번에는 분명 한 시간이면 끝난다"고 생각하는 것보다 "한 시간 정도 예상하지만 조금 더 걸릴 수도 있다"고 생각하면 실제 일정이 달라졌을 때 대응하기가 편합니다.
제품을 고를 때도 마찬가지입니다.
"이게 무조건 최고다"보다 "현재 확인한 조건에서는 이 제품이 나에게 가장 적합해 보인다"고 생각하면 새로운 정보를 받아들이기 쉬워집니다.
과잉확신을 이해하는 목적은 자신의 판단을 계속 의심하는 데 있지 않습니다.
자신감과 정확성이 항상 같은 것은 아니라는 사실을 기억하고, 중요한 결정에서는 내가 놓친 정보가 있을 가능성을 한 번 더 확인하는 것에 가깝습니다.
자신의 판단을 믿되 수정할 여지를 남겨두는 것. 그것이 경험이 쌓일수록 오히려 더 필요한 판단 습관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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